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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 먼지맘/오랜이야기

지극히 평범한 신규 공무원의 일상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by 똥장군 2023.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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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1. 작성글
네이버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백업하여 올립니다. 
 
 
어느덧 16번째 녹봉을 먹었다. 세월이 정말이지 빠르구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모두가 힘들었던 시기에 남들은 모르게 신규공무원인 나 역시도 힘든 시기를 보냈다.

 
 

2019년 9월 말 꼬까옷 정장 입고 출근했던 첫날. 바~로 돼지열병 비상근무 서야 되니까 날짜 정하라고 해서 어버버한 상태로 근무일 정하고 새벽근무를 섰다. (자꾸 야간근무랑 야간당직 남자만 한다고 하는 놈들 죽인다 진짜.. 산불 끄러 똑같이 등짐펌프 메고 올라가는구먼..)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산불 담당자로 정해졌다길래(기피 업무라 신규가 맡는 경우가 많다..ㅎ) 근무를 서게 된 10월.
첫 산불 비상근무날에 산불이 나서 준비도 못한 채 슬립온 신고 산 정상까지 등반했다.
또 산지전용이 뭔지도 정확히 몰랐지만 감사 자료를 준비한답시고 전입자가 버리고 간 정리 안 된 서류와 대장을 정리하며 야근을 밥먹 듯이 하며 버텼다.
 
 
그리고 2020년 새해가 밝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일해보자! 했건만
봄철 산불 비상근무가 진행되는 와중에 코로나 19라는 게 터졌단다. 비상근무가 또 늘었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던 그때, 대민업무 하는 직원들한테는 마스크를 지급해 주겠지.. 했는데 처음 5~6회 정도 나눠주더니 나중엔 알아서 구해 쓰란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우리 시는 마스크를 시민들에게 직접 배부를 하겠다고 한다. 마스크 비상근무라는 게 하나 더 늘었고 주말 아침부터 나와서 목청 터지게 사람들을 줄을 세워 마스크를 일일이 세어 나눠준다.
이까짓 거 몇 장 받으려고 줄을 이렇게 세우냐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람들에게 괜히 일하면서 욕을 먹는다.
오늘도 싸움이 났다.
 
 
지난겨울 기온도 높았고 눈이 오지 않아 걱정했었는데 역시나 3월이 되자마자 여기저기서 작게 산불이 나기 시작하더니 4월에만 큰 산불이 3번 났다.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며 먼지 사진을 바라본다. 나만 기다리고 있을 먼지한테 너무나도 미안해진다.
그 와중에 또 하나의 업무였던 코로나 자가격리자 모니터링을 얼른 하라며 독촉전화가 온다. 전화기를 부숴버리고 싶다.
 
 
재난지원금이라는 걸 배부하게 되었단다. 관할 읍면동 사무소에서 접수를 받게 된다고 하는데..
사업 시작 3일 전까지 이렇다 할 세부내용이 내려오지 않는다. 쉴 새 없이 문의 전화가 오지만 우리도 아는 게 없어요.. 중앙부처에서 전화를 안 받는 것을 지방 공무원에게 화풀이를 한다. 누구에게나 처음 맞게 된 재난 상황이지만 사람들은 어여삐 봐주지 않는다. 왜 아직도 아무 내용을 모르냐며 욕을 그냥 후드려 먹는다. 이 정도 일했으면 이 정도는 뭐 여유 있게 넘겨버릴 수 있어야 한다..
 
 
본격적인 재난지원금 배부 업무가 시작되었다. 내 본업을 하다가(난 녹지직이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접수처로 이동하여 재난 지원금 지원 업무를 한다. 어쩔 수 없이 그사이에 내 업무는 공백이 생긴다. 니 업무가 중요하지 다른 일이 중요하냐며 빨리 해달라고 욕을 먹지만 이러쿵저러쿵 핑계 대봤자 욕을 먹게 되어 있는 공노비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특성이 있으므로 그냥 그러려니 한다.
 
 
지금 몇 개의 비상근무를 하고 있는 건지 셀 수가 없다. 그 와중에도 당직 순번은 돌아오고 우리 시는 생활민원처리라고 해서 당직 외에도 민원처리 근무를 추가로 세운다. 요즘은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는 시간이 지나간다.
 
 
하필 올해 지방선거까지 있다니....... 선거 전 주말에 전 직원과 봉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공보 작업을 하고(이런 것까지 공무원이 할 줄은.....)
선거일 전날에 각 투표구에 가서 투표구를 설치한다. 
바닥에 매트도 깔고 복도 바닥에 화살표 스티커와 1미터 거리유지 스티커를 붙인다. (이런 것까지 공무원이 할 줄은.....)
조금이라도 시설이나 물품에 흠집이 생기면 알아서 하라고 으름장을 놓는 투표구 학교 경비원을 등지고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도록 열심히 매트를 깐다.
(난 선관위에서 뭐라도 하는 줄 알았지...)
오랜만에 몸을 쓰니 온몸이 쑤신다. 다음날인 투표날은 새벽 5시 반까지 모이란다. 준비 다 끝났는데.. 그렇게까지 일찍 모일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외치고 싶지만 FM팀장님에게 예외란 없다.
못 일어날까 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5시 반까지 출근했더니 거봐... 역시 너무 일찍 와서 할 게 없다. 선거가 시작되는 7시까지 복도에서 추위에 떨며 멍 때리고 기다린다. 12시간 가까이 서서 말을 했더니 죽을 것 같지만 드디어 다 끝났다 생각하니 기분은 또 좋다.
 
 
5월의 끝자락까지 지긋지긋하게 산불이 나더니 드디어 산불기간이 끝났다. 내가 담당자일 때와 아닐 때의 차이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그냥 나도 다른 직원이 시키는 일 하며 왜 이 늦은 시간에 소집시키냐며 투덜대고 싶다.
 
 
봄 ~ 여름은 하늘은 맑고 산은 푸르르니 녹지직은 할 일이 많아진다. 내가 일하는 이곳은 시골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도시도 아닌 중소도시로 이쪽으로 눈을 돌리면 신도시 저쪽으로 눈을 돌리면 여전히 동성촌락이 존재하는 시골이다. 
 
도시가 아닌 곳은 구획이 제대로 안 된 곳이 많아 갈등이 잦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갈등 속에는 언제나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나무가 있다. 지목에 따라 그 나무의 운명은 좌우된다. 그냥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자를 수 있는 나무와 동의서를 받아와도 자를 수 없는 나무. 그 사이에는 많은 갈등이 있고 나는 그 속에서 욕을 먹는다.
그렇지만 같은 직원들 사이에 니 업무다, 이것도 니 업무다 라며 핑퐁으로 생기는 갈등이 더 무섭다는 걸 느끼게 된 시점이었다.
 
 
더위를 극악으로 타는 나에게 이번 여름은 출장을 하도 나가서 매일 육수를 한 바가지는 흘렸던 때로 기억될 듯하다.  상사를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사내 삶의 질이 좌우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지만 나 역시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게 된 순간이 있었다. 예산은 정해져 있고 정비할 수 있는 구역은 한정되어 있으며 담당자가 할 수 있는 일도 정해지기 마련이다.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무작정 가지고 온 민원인에게 열심히 설명을 했고 차선책을 알려줬고  그 사람도 만족을 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뒤돌아 쪼르르 달려간 곳에는 이 지역 출신의 높으신 분이 있었고 그분의 한마디에 내 나름의 기준은 무너진다. 매일 물 한 모금 못 먹은 갈대처럼 이리저리 꺾여버린다. 이렇게 반복되니 그냥 될 대로 되고 얼른 예산 소진해 버리자 모드로 바뀌는구나 싶어 무서웠다. 
 
 
2020년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 왔고 수해가 많이 났다. 매년 수해 비상근무는 항상 별거 없었어~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 놀랄 노자다. 한국에서 태풍이 불어봤자 얼마나 불겠나 싶었는데.. 시골의 태풍이 이렇게 무서울 줄은 도심 안에서만 평생을 살았던 나는 몰랐다. 
나무가 쓰러져서 통행이 어려우니 얼른 치워달라는 민원부터 내가 심어 놓은 나무도 아니건만 본인 땅으로 잡목이 쓰러졌는데 얼른 안 치우냐고 대뜸 욕을 먹는다.
민원을 접수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 민원이 들어온다. 한 시간 전에 전화했던 사람이 왜 아직도 안 치우냐고 또 전화 온다. 왜냐면 지금 선생님 앞에 50명은 더 있거든요.. 
그날 하루를 마감하니 전화만 80통을 넘게 받았다. 오늘 하루 우리 시에서 내가 제일 민원 건수가 많았을 거라며 쓴 농담을 주고받으며 퇴근하는데 우리랑 비슷한 규모의 큰 센터에서 일하는 동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출장을 나가는 중이란다. 100그루의 나무가 한 번에 쓰러진 곳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며..
 
 
그렇게 여름에서 가을까지 버텼고 10월이 되었다. 매일 같은 직원들과 혹은 민원인과 싸워가며 내 사업 예산을 (지켜가며) 모두 소진했고 준공계가 이렇게 반가울 줄은 미처 몰랐다. 
 
 
코로나19로 무기한 미뤄졌던 신규자 교육이라는 걸 이제야 갈 수 있게 되었단다. 입사한 지 1년이 지나가는 신규자 교육.. 원래 집합교육 4주 과정이었으나 재택교육 2주 과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모든 선배 공무원들이 너무 안타깝다고 집합교육 때 만난 동기들이 평생 가는 추억인데 라며 대신 아쉬워했지만 아무렴 어떠냐 여기를 벗어나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코로나로 떡상했다는 ZOOM을 다 써보는구나. 거의 누워서 교육을 들었?다. 오랜만에 본가에 가서 좌식자.. 아니 와식자처럼 누워 지냈다. 그렇게 휴가는 빠르게 지나갔고 다시 그 자리로 복귀를 했다. 
 
 
복귀를 하니 상큼하게 가을철 산불기간이 다가왔다. 강하게 훈련된 나는 수월하게 준비를 해나갔다. 사람은 이렇게 적응해 나가는구나 를 새삼 실감하며 2020년 다들 그러했듯이 나 역시도 역대 가장 조용했던 송년회 없는 연말을 맞이했다.
 
 
아마 일반적인 신규 공무원의 일 년은 아닐 수도 있다. 전대미문의 비상상황을 맞은 시기였기에 누구보다도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고 힘들었다. 한 번쯤은 쓰고 싶었던 글이었는데 이렇게 길어질까 봐 여태 못 썼나 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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